Sunday, June 15, 2008

아저씨의 재발견...

처음으로 촛불집회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그동안 일과 집회 참가만으로도 몸이 너무 힘들어서 후기 같은 건 절대 써볼 엄두도 안 났는데, 이제 장기전으로 가야 하지 않나 싶어, 마음의 여유를 좀 갖고 돌아보기로 했다.

처음에 촛불 집회 나가게 된 계기는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사실 난 고기 자체를 그닥 즐기는 타입이 아니어서, 쇠고기 안 먹고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촛불문화제(집회는 불법이라며?)에 참석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심 이명박은 당신들이 뽑았으니, 당신들이 어떻게 해보세요. 라는 식의 방관자적인 입장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 국민이 하는 말은 어디 개 짖냐? 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좀 기가 막혔다. 나는 남이 같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고, 남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나의 자유도 존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자유나 행복추구권이 짓밟히고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 일원인 나의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의 눈에 이 정부의 국민에 대한 태도가 너무 방만해 보이기만 했다.

가두시위가 시작된 것은 나에겐, 4번째인가 참여한 촛불집회에서 였다(5/24-5/25). 계속되는 문화제. 귀를 닫아 버린 정부. 어쩌면 그건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노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주최측인 대책위에서는 그렇게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나는 급변하는 상황에서 흥분되기도 하고, 이 사태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에 끝까지 남았고, 결국에는 경찰 진압까지 겪어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공권력. 공권력이란 건 정말 무서운 거구나 하는 생각.

그런 진압 장면을 본 이후로는 정말 한번의 집회도 빠지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폭력적으로 진압 한 다음 정부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덮어버린다면...끔찍했다. 마치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날(5/25) 오후의 진압은 정말 폭력적이었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아서 그렇지, 어쩌면 6월1일의 그것보다 더 심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강제진압 동영상은 그냥 좌시하던 사람들, 쇠고기 수입문제에는 별 관심 없던 사람들 까지도, 참여 하게 만들었다. 현 정부의 심각함을 그들도 피부로 느끼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아직 언론에 보도 되기 전이었다. 일부, afreeca 나 아고라를 통해 상황을 접하고 있는 사람들 외에는 잘 모르는 듯 했다.


그러나, 이 폭력진압 상황도 6월 1일 극에 달해, 결국 언론에 크게 이슈가 되었다. 군화발 여대생, 머리에 피를 흘리며 실려 가는 여학생. 코뼈가 부러져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저씨. 수도 없는 폭력적인 진압 영상이 정부에 대한 여론을 악화 시키며 참여하는 시민들도 늘게 만들었다.

그러한 여론 때문이었는지, 경찰들도 쉽게 진압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되도록 전경차를 이용하여 시민들의 청와대 진입을 막으려 했고, 대치 상황에서 시민들이 무리한 시도를 해도 카메라 플래쉬가 터지는 곳에서라면 폭력을 사용하지 못했다. 물론 다리 밑으로는 수없이 군화발을 날려댔지만.^^;;

그 이후로 6월6일 연휴기간, 6월 10일 100만 대행진 등. 이슈화 시켜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도록 만들었지만, 정부는 시민들의 말을 듣기는 커녕 콘테이너나 가져다가 쌓으므로써, 자신의 권위마저 희화화 시켰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심각성에 대한 보도, 강제진압 하고 싶으나 언론의 보도로 인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 자꾸만 심각해지는 조중동 불매 운동.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정부측에 조속한 언론장악의 필요성을 더 극대화 시켰는지
감사원은 kbs를 감찰, 수사 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내부에서 언론 장악의 두려움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전경들의 군화발보다 방패보다, 그들의 곤봉보다 더 두려운 건 언론장악이라고. 그래서 며칠 전부터 kbs 에서 소규모로 집회가 시작되었다.

말이 주저리주저리 길어 지긴 했지만, 지금 내 글은 바로 이 kbs 에서의 집회에 대한 후기이다 ^^;;
사람들이 그닥 많이 모이지 않아서 좀 안타깝긴 하지만 확실히 소규모로 모여 있으니 감흥이 다르다. 대책위에서 주관하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웅변식의 자유발언이 아니라, 정말로 현실적인 문제들, 이제 앞으로 이 촛불집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이미 이 논란이 쇠고기 문제만은 아님을 거의 대부분의 시민들이 동의 하고 있었다). 참여자들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폭력과 비폭력의 한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혹은 비폭력을 언제까지 유지 할 수 있을지...

많은 얘기들이 나왔다. 이미 내가 생각했던 부분들도 있고, 아닌 부분들도 있다. 모인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너무나 다양하다 보니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된다. 오죽했으면 '대중(大衆)' 이 아니라 '다중(多衆)' 이라고 불릴까?


제목인 '아저씨의 재발견...'이란 것은 내가 느낀 이 감흥의 일부분에 불과한데, 같이 참가한 동생과 가장 재미있게 나눈 얘기여서 제목이 되었다. 바로 '아저씨들이 너무 멋있다!!'였다. 왜들 그렇게 똑똑하신지, 다들 각자 다른 의견들을 내시는데, 모든 의견들이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이 있다. 물론 아저씨들만 똑똑하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이제 정부의 정책에 별 항의 없이 묻어가셔도 될 듯한 나이 대의 분들이 굉장히 열렬하게 참여하시는 모습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게다가 살아오시면서 바뀌어 온 정권을 흐름을 지켜보셨던 분들이어서 그런지 다양한 시각들을 경험에 살려서 피력해 주셨다. 그건 정말 우리 젊은 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이었다. 물론 젊은이들의 무모함도 아저씨들에게는 필요하시겠지만.


큰 집회에서도 그랬지만, 촛불집회는 우석균 박사 말대로 어떤 inspiration 이 되는 것 같다.(이 말을 어떻게 우리말로 적당해 풀이 해야 될지 모르겠다.) 특히 작은 집회에서는 더욱더. 서울토박이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떤 마을의 두레 같은 것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김밥을 싸오시고(그들의 옷에는 '우리는 무적의 김밥부대다.' 라는 말이 적혀 있어서 웃음.), 물, 초코파이, 초콜릿등을 사다 주신다. 주위에 사시는 분들의 노고다. 월미도에서 'Friends' 라는 노점상을 하시는 어떤 분은 매번 나오셔서 무료로 커피를 끓여주신다. 라면도 끓여 주실 수 있다고 하자 어떤 분은 라면을 몇박스 보내주셨다. 새벽에 끓여서 컵에 담아 먹는 이 맛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커피나 라면을 한사람씩 가져다 먹으면 혼잡해진다고, 자원봉사자들이 몇명 달라붙어서 직접 가져다 준다. 모든이가 배불러 질 때 까지 자원봉사자들은 계속해서 돌아다니며 물어본다, 라면 드셨어요? 커피 드릴까요?

의료봉사단들은 무언가 나누어 주는데, 포도당이란다. '기력 떨어지셨으면 드세요' 라며. 이미 커피와 라면으로 그리고 그 분들의 따듯한 마음으로 위는 물론 마음까지 포식을 하였건만.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모금을 한다. 감사하다고 인사도 드리고. 그렇게 춥지도(담요도 가져다 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배고프지도 않게 재밌게 토론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훌쩍갔다. 네시 정도까지 마이크 장비를 갖고와서 대여해주시고 관리해주시던 언론 노조분도 돌아가시고(이분도 정말 계속 돌아가셔도 된다고 해도, 끝까지 남아있겠다고 우기셨다^^;;), 우리는 이제 얼마 안남은 사람끼지 모여 조근조근 대화 했다. 잘 들리지 않으니 되도록 자리를 좁혀가면서.


한분이 그러신다. 분명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이런식으로 모여서 토론을 벌렸을 꺼라고. 이게 '아고라'지 무었이겠냐고 하시면서...

이 촛불...중독성 있다.

1 comment:

Unknown said...

부끄럽다. 민주주의로 향하는 열차에 무임승차 하는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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